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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브이로그

경주 파도소리길·간포 깍지길 걷기, 주상절리부터 송대말 등대까지

by 김도현 여행길 2025. 4. 10.

시작하며

경주는 유적지나 사찰로 유명한 도시지만, 최근에는 바닷길 트레킹 코스로도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한적한 어촌 풍경, 독특한 지형, 걷기 좋은 해안 데크길까지 더해져 일상에 지친 사람들에게 좋은 쉼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특히 ‘하서항’에서 출발하는 ‘파도소리길’과 ‘간포 깍지길’은 군사 작전 구역으로 한동안 일반인 출입이 통제되었던 지역이어서 그 신선함이 더하다.

이번 글에서는 서울에서 차로 4시간이면 닿는 경주의 해안 산책길, 그중에서도 놓치기 아까운 핵심 코스를 중심으로 정리해본다.

 

 

1. 하서항에서 출발하는 걷기 좋은 해안길

경주시 하서항은 주차 공간이 넉넉하고, 주차비도 무료여서 시작지점으로 매우 적합하다. 이곳에서 파도소리길이 시작되는데, 과거 군사 보호구역으로 일반인 출입이 제한되었던 지역이 최근에 개방되면서 그 풍경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이 산책로는 약 1.7km 거리로 길지 않아서 왕복해도 1시간 반이면 여유롭게 다녀올 수 있다. 길은 바다와 맞닿아 있어 걷는 동안 파도 소리가 계속 들려와 이름 그대로 ‘파도소리길’이라는 이름이 딱 맞는다.

 

2. 주상절리 따라 걷는 자연의 길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곧바로 주상절리를 만나게 된다. 수직으로 솟은 이 기둥 형태의 바위들은 약 2,000만 년 전 화산 활동으로 형성된 것으로, 마그마가 급속히 식으면서 만들어진 독특한 자연 지형이다.

이 구간은 단순히 걷는 것에 그치지 않고, 바위 형태를 하나하나 관찰하며 자연의 역사와 마주하는 느낌을 준다. 누워 있는 형태의 주상절리는 다른 지역에서는 보기 힘든 희귀한 모습이다. 마치 거대한 나무 기둥을 가지런히 눕혀놓은 듯한 이 풍경은 걷는 이들에게 잊을 수 없는 장면이 된다.

안내판도 잘 설치되어 있어 설명을 읽으며 걸으면 더욱 흥미롭다.

 

3. 감성 가득한 포토 스폿과 전망대

산책로 중간쯤엔 ‘사랑의 열쇠’라는 조형물이 있다. 신라시대 충신의 사랑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곳은 연인들의 사진 명소로 잘 알려져 있다. 바다를 배경으로 한 빨간 하트 모양 조형물은 조용하고 평화로운 어촌 풍경과 묘하게 어울린다.

조금 더 걸으면 주상절리 전망대가 등장한다. 입장료는 없고, 매주 월요일을 제외하고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개방된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전망타워 꼭대기까지 올라가면 부채골처럼 펼쳐진 주상절리 단면과 시원한 바다 풍경이 펼쳐진다.

전망대 주변에는 풍경 좋은 카페들도 있어서, 천천히 걷다 한 잔의 커피와 함께 여유를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다.

 

4. 바닷길에 숨겨진 하트 해안과 출렁다리

전망대를 지나 조금 더 걷다 보면 ‘하트 해안’이라는 이름의 장소가 나타난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해안선이 하트 모양처럼 생겨 있어 붙여진 이름인데, 이곳 역시 사진 찍기 좋은 포인트로 인기가 많다. 파도소리길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풍경이라 더 특별하게 느껴진다.

하트 해안을 지나면 바다 위에 설치된 출렁다리가 등장한다. 생각보다 다리가 꽤 흔들리기 때문에 스릴이 느껴지지만, 다리 위에서 바라보는 탁 트인 바다 풍경은 그 모든 긴장을 잊게 만든다. 흔들리는 느낌마저도 이 코스의 매력으로 다가온다.

이 다리를 지나면 파도소리길의 끝지점인 읍천항에 닿는다.

 

5. 읍천항의 벽화와 따뜻한 간식

읍천항은 조용하고 아담한 항구다. 항구를 따라 조성된 벽화 마을은 걷는 재미가 있다. 방파제에도 그림이 그려져 있고, 멀리서 보면 배가 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벽화도 있다. 항구 주변은 어촌 특유의 여유로운 분위기가 그대로 살아 있어, 바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기에 딱이다.

항 근처에는 현지에서 유명한 쌀 꽈배기 가게도 있다. 일반 꽈배기와는 다르게 미역, 고구마, 흑미 등 다양한 재료가 들어가 있어 골라 먹는 재미도 쏠쏠하다. 돌미역 꽈배기를 맛봤는데, 은은한 바다 향이 느껴져 꽤 인상적이었다.

이 주변에는 무료 주차장도 잘 마련되어 있어 여행 동선 짜기가 편하다. 조금 더 걸으면 방파제와 등대가 있는 구간도 나온다. 이곳에서는 바다 위로 햇빛이 반사되어 반짝이는 모습이 정말 아름답게 펼쳐진다.

 

6. 군사지역에서 걷기 코스로 변신한 간포 깍지길

시간 여유가 된다면 간포 깍지길까지 코스를 넓혀보는 것도 추천할 만하다. 총 18.8km 길이의 해안 트레킹 코스 중 일부만 걸어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풍경을 만날 수 있다. 이번 여정에서는 전촌항부터 단용굴까지 걷고, 간포항과 송대말 등대는 차량을 이용해 이동했다.

전촌항을 들머리로 삼아 걷기 시작하면 10분쯤 지나 갈림길이 나온다. 여기서 ‘사룡굴’ 방향으로 향하면, 파도가 강하게 부딪히는 바위 사이에 동굴처럼 생긴 공간이 등장한다. 실제로는 네 개의 굴이 있지만 파도 때문에 그중 두 개만 가까이서 볼 수 있다.

조금 더 걸어가면 단용굴이 나오는데, 이곳은 접근이 다소 어려워 멀리서 바라보는 게 일반적이다. 해안선을 따라 걷는 길은 나무 데크로 잘 정비되어 있지만, 계단이 많은 편이라 체력 안배는 필요하다.

 

7. 간포항 골목길 따라 걷는 해국길

단용굴에서 북쪽으로 이동하면 간포항이 나타난다. 항구 근처에는 간포공설시장이 있고, 시장 제2문을 나서면 해국길이라는 아담한 골목길이 시작된다. 이곳은 일제강점기 시절의 적산가옥과 오래된 콘크리트 건물들이 남아 있어 과거의 흔적을 느낄 수 있다.

해안 절벽에 자라는 해국을 주제로 한 벽화들도 골목 곳곳에 그려져 있어, 걷는 내내 작은 미술관을 구경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그중에서도 간포제일교회 계단 아래에 있는 ‘해국 계단’은 최근 젊은 여행객 사이에서 사진 명소로 유명하다.

계단을 올라 오른쪽으로 이동하면, 과거 일본인 사업가의 별장 창고로 사용됐던 오래된 건물이 눈에 띈다. 지금은 ‘192’라는 이름의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해, 옛 목욕탕 구조를 그대로 살리면서도 빈티지한 감성을 풍긴다. 내부에는 낡은 가구와 소품들이 그대로 전시되어 있어 1980년대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단, 수요일은 휴무이니 방문 전 확인이 필요하다

 

8. 송대말 등대에서 마무리하는 경주 해안 걷기

이번 걷기의 마지막 코스는 송대말 등대다. 등대 앞에는 별도 주차장이 없어서 근처 공터에 주차해야 하지만, 걸어서 이동하는 시간이 길지는 않다. 이곳은 ‘소나무가 많은 육지의 끝’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으며, 일출과 일몰 명소로도 손꼽힌다.

송대말 등대는 최근 리모델링을 통해 경주의 상징 중 하나인 가은사지 삼층석탑을 본떠 독특한 외관으로 새롭게 단장됐다. 이 날은 늦은 시간이어서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었지만, 등대 주변에서 바라본 석양은 그 자체로 충분히 아름다웠다.

바다 너머로 해가 지는 풍경을 조용히 바라보고 있자니, 이번 여행의 모든 순간이 차분하게 정리되는 느낌이었다.

 

마치며

이번 경주의 해안길 여행은 단순한 산책 그 이상이었다. 걷기 좋은 길을 따라 이어진 자연, 역사, 사람의 이야기가 어우러진 풍경은 그 자체로 편안한 쉼이 되어주었다. 파도 소리, 절벽 위 소나무, 오래된 골목길, 그리고 마지막 송대말 등대에서 마주한 노을까지… 평범한 일상에 작은 변화와 여운을 남기기에 충분한 여정이었다.

언제 떠나는 게 좋을까 망설이기보다는, 가볍게 마음이 이끄는 대로 움직이는 것도 나쁘지 않다. 걷는 동안 마음이 가볍고 따뜻해졌던 것처럼, 당신에게도 그런 길이 하나쯤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