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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브이로그

밀양 여여정사 동굴법당 후기: 국내 최대 규모의 조용한 사찰 여행

by 김도현 여행길 2025. 4. 14.

시작하며

사찰이라고 하면 고즈넉한 전통 한옥을 떠올리기 쉽다. 그런데 경남 밀양의 삼랑진읍에 위치한 여여정사는 조금 다르다. 외형은 현대식 석조건물이지만, 그 속에는 불교적 정신과 깊은 고요함이 살아 있다. 동굴 속에 법당이 자리하고, 백옥으로 만든 관음상이 산중을 바라보는 이 사찰은, 흔히 접할 수 있는 절의 이미지와는 확연히 다르다.

경전보다 현실의 고민을 품고 떠난 이들이 고요한 공간에서 스스로를 돌아보기에 더없이 적합한 곳. 화려한 장식이나 유서 깊은 역사 대신, 조용히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는 차분한 분위기가 이곳의 가장 큰 매력이다.

 

 

1. 삼랑진 깊숙한 산자락에 자리한 절

여여정사가 들어선 곳은 구암산의 산기슭이다. 이름처럼 이 일대에는 예전부터 여러 암자와 수행처가 흩어져 있었고, 이곳 사람들은 절이 많다고 해서 ‘절굴마을’이라고도 불렀다. 실제로 지금도 이 일대는 자연이 온전히 보존되어 있고, 계곡과 숲길이 절을 감싸고 있다.

이 절이 처음 조성된 건 1990년대 초반이다. 한 스님이 약 8만평의 부지를 구입한 후 7년에 걸쳐 하나씩 불사를 진행해 1997년에 대웅보전을 세웠다. 이후 동굴법당, 관음전, 달마공원까지 하나둘 자리를 잡아 지금의 모습에 이르렀다.

삼랑진은 예전에는 철도 교통의 요지로 많은 사람들이 오갔지만, 지금은 상대적으로 조용한 동네다. 그래서인지 이곳을 찾는 사람들도 북적이기보다는 조용한 풍경을 즐기며 사찰을 둘러본다.

 

2. 석조건물로 지어진 대웅보전

여여정사의 중심 공간인 대웅보전은 일반적인 전통 한옥과는 다르다. 2층 규모의 석조건물로 지어졌고, 외관도 현대적인 느낌이 강하다. 1층에는 극락전, 2층에는 본래의 대웅전이 위치해 있다.

대웅전 안에는 석가모니불이 중심에 있고, 좌우로는 약사여래불과 아미타불이 봉안되어 있다. 흥미로운 점은 신중탱화를 그림이 아닌 나무로 조각한 형태로 구성했다는 것. 이는 보기 드문 형식이며, 정갈하고 차분한 느낌을 준다.

이곳에는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목조 관음보살상도 있다. 다만 이 불상은 평소에는 공개되지 않고, 1년에 한 번 정도만 볼 수 있다고 한다.

 

3. 관세음보살을 모신 극락전과 상징의 공간

극락전은 대웅보전 1층에 자리하고 있다. 내부에는 관세음보살의 형상이 모셔져 있으며, 극락정토에 도달하기 위한 ‘육바라밀’, ‘팔정도’, ‘견성성불’과 같은 개념이 각 방 이름으로 활용되어 있다.

입구에 자리한 ‘불로문’도 이색적이다. 이 문을 통과하면 늙지 않기를 기원하는 의미가 담겨 있으며, 건강과 장수를 기도하러 이 문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 단순히 장식적인 공간을 넘어서, 사람들이 바람과 소원을 담아내는 상징적 장소로 자리하고 있다.

 

4. 물이 흐르는 동굴 속 약사전

여여정사에서 가장 유명한 공간은 단연 ‘동굴법당’이다. 본래 일반적인 불당을 세우려 했지만, 공사 중 지하에서 계속해서 물이 솟아나오자 방향을 틀어 동굴법당으로 조성하게 됐다고 한다.

이 동굴법당은 두 곳으로 나뉘어 있으며, 벽면을 따라 크고 작은 불상들이 빼곡하게 조성돼 있다. 전체 불상 수는 약 1,300개 이상으로, 하나하나 자세나 표정이 다르다. 단순한 장식이 아닌, 각기 다른 의미와 상징을 담고 있는 불상들 덕분에 천천히 둘러볼수록 더 많은 이야기가 보인다.

법당 안에는 여전히 물이 흐르며, 어둡고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불빛 아래 떠오르는 불상들의 모습은 몽환적이기까지 하다. 처음 이곳을 찾는 이들은 생각보다 깊고 넓은 규모에 놀라며, 동굴이 주는 정적인 에너지에 압도당하곤 한다.

 

5. 백옥으로 만든 관음대불과 관음전

사찰 야외 한가운데에는 커다란 관음대불이 세워져 있다. 이 불상은 높이만 9미터, 무게는 35톤에 달하며, 베트남 다낭에서 제작되어 이곳에 옮겨왔다. 백옥으로 조성되어 햇살을 받을 때마다 부드럽게 빛이 퍼지고, 왼손에 감로수를 들고 있는 모습은 자비를 상징한다.

관음대불 앞에는 관세음보살을 모신 관음전이 자리하고 있다. 관세음보살은 세상의 고통을 듣고 도와주는 존재로, 이 전각은 소원을 빌거나 가족의 건강을 기원하는 사람들이 자주 찾는 곳이다. 실내는 다른 전각보다 비교적 밝고 아늑하게 조성되어 있으며, 누구나 잠시 머물러 조용히 기도하거나 명상을 할 수 있다.

 

6. 새로 지어진 산신각과 달마공원

기존 산신각 외에 최근 새롭게 지어진 산신각이 하나 더 있다. 이곳은 금무산 산신령을 모시고 있으며, 아직 공사가 일부 진행 중이다. 정식 개방은 되지 않았지만 조용한 뒷산 산책길과 연결되어 있어 천천히 오르다 보면 작은 휴식처처럼 느껴지는 곳이다.

사찰 한쪽에는 달마공원도 마련돼 있다. 달마대사의 전설, 특히 수행 중 졸음을 이기기 위해 스스로 눈꺼풀을 잘랐다는 일화에서 착안해 다양한 조형물과 명상 공간이 조성되어 있다. 가볍게 산책하거나 벤치에 앉아 주변을 둘러보기에 적당하며, 불교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사람도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는 장소다.

 

7. 사찰 이름에 담긴 의미

‘여여정사’라는 이름 자체에도 깊은 뜻이 담겨 있다. ‘여여(如如)’는 어떤 상황에도 흔들림 없이,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불교 철학적 개념이고, ‘정사(精舍)’는 수행하는 공간을 뜻한다.

이 사찰은 외관이 화려하거나, 오랜 역사를 가진 절은 아니지만, 사람들 마음 안의 무게를 덜어주는 데에는 충분하다. 조용히 걷고, 앉고, 보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무언가 정리되는 느낌을 받게 되는 곳이다.

 

8. 방문 전 유용한 팁

✔ 꼭 챙길 것들

  • 자가용 이용 추천 (대중교통 접근 어려움)
  • 운동화 착용 필수 (계단과 경사로 많음)
  • 사찰 내 식당·편의점 없음, 인근 삼랑진읍에서 식사 해결
  • 사진 촬영 가능하나 삼각대 사용은 제한될 수 있음
  • 동굴 내부 조명 어두우므로 조심히 이동

✔ 관람 소요 시간

전체적으로 여유 있게 둘러보면 약 1시간 30분에서 2시간 정도 소요된다.

✔ 자주 묻는 질문 정리

질문 답변
동굴법당 입장은 누구나 가능한가요? 네, 일반인도 출입 가능하며 제한은 없습니다.
백옥관음대불 근처 촬영은 가능한가요? 가능합니다. 다만 상업적 촬영은 사전 문의가 필요합니다.
내부 문화재는 항상 공개되나요? 아닙니다. 목조 관음보살상은 1년에 한 번만 공개됩니다.
주차는 가능한가요? 무료 주차 공간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마치며

밀양 삼랑진의 여여정사는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한 번쯤 찾아가볼 만한 사찰이다. 국내 최대 규모의 동굴법당, 백옥으로 만든 거대한 관음대불, 조용히 걷기 좋은 달마공원과 신축 산신각까지. 사람 많고 복잡한 관광지보다 조용하고 차분한 장소를 찾는 이들에게 어울리는 공간이다.

말이 많지 않아도, 설명이 없어도, 그냥 있는 그대로 머무는 법을 배우게 되는 곳. 여여정사는 그런 시간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잠시 멈출 수 있는 여유를 건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