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며
날씨가 따뜻해지면 괜히 바깥 공기가 그리워진다. 복잡한 도심을 잠시 벗어나, 자연을 가까이서 느낄 수 있는 서울 안의 산책 코스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오늘 소개할 코스는 서울 도봉구에 위치한 산책길로, 도봉역에서 시작해 무수천을 따라 걷고, 북한산 둘레길 일부 구간인 방학동길을 지나 왕실묘역까지 닿는 6km 코스다. 전체 구간이 대부분 평탄하고 경치가 좋아 혼자 걷기에도 좋고, 누군가와 함께해도 더없이 좋다.
출발은 지하철 1호선 도봉역 1번 출구. 역에서 나와 횡단보도를 건너면 바로 작은 골목이 이어지는데, 이 길을 따라가면 무수천이 나타난다. 도봉산에서 흘러내려오는 이 물줄기는 도시 한가운데에서 보기 드문 조용하고 정갈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물 따라 걷는 길은 복잡했던 마음을 천천히 가라앉혀 준다.
천천히 걷다 보면 이따금 마을버스가 옆을 지나가기도 한다. 도봉08번 버스를 타면 빠르게 산책 시작지점까지 갈 수 있지만, 햇살 좋은 날엔 걸어보는 것도 괜찮다. 약 20분이면 충분하다.
무수교를 지나면서 분위기는 더욱 고요해진다. 이곳은 여름철이면 아이들이 물놀이를 하러 많이 오는 곳이라 조금은 낯익을 수도 있다. 길 주변에는 무수골 야영장이 있어 지도 앱에서 검색하면 금방 찾을 수 있다. 근처 공중화장실은 출발 전 미리 들러두는 게 좋다.
산책로가 두 갈래로 나뉘는 지점에서는 왼쪽으로 향한다. 이 방향이 바로 북한산 둘레길 19구간인 방학동길이다. 도심 근교에서 이렇게 조용한 오솔길을 만난다는 건, 조금은 행운처럼 느껴진다. 이 길은 경사가 거의 없고 길이 평탄해서 체력에 자신 없는 사람도 부담 없이 걷기에 좋다.
걷다 보면 주변의 나무들이 점점 풍성해지고, 이름 모를 새들이 노래하듯 울고 있다. 봄기운을 가득 머금은 철쭉과 개나리는 흙냄새와 잘 어울려, 발걸음을 더디게 만든다. 길옆에 붙은 이정표를 따라가면 길을 헤맬 염려도 없다. ‘정의공주묘’라는 표지를 기억해 두면 된다.
방학동이란 지명은 옛날 방아(방하)와 관련이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방학이 길어서 그런 건 아닐까 했던 어린 시절의 상상이 떠오른다. 그런 익숙한 이름도, 걸으며 하나씩 다시 음미해보게 된다.
1. 쌍둥이 전망대에서 서울 전경 감상하기
길 중간중간 나무로 만든 계단이 나오지만 힘들 정도는 아니다. 그리 가파르지 않아서, 천천히 걸으면 전혀 부담스럽지 않다. 소나무숲이 우거진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어느새 쌍둥이 전망대가 등장한다. 똑같이 생긴 두 기둥이 나란히 서 있어서 붙여진 이름인데, 이곳이 이 산책 코스의 가장 멋진 구간이기도 하다.
전망대 위로 올라서면 도봉산이 눈앞에 펼쳐지고, 날씨가 맑다면 수락산과 불암산까지 시야에 들어온다. 시끄러운 도심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드는 동시에, 멀리 빼곡한 건물들이 보여주듯 ‘이곳도 여전히 서울이구나’ 싶은 생각이 함께 든다.
잠시 머물다 계단을 따라 내려오면 다시 방학동길이 이어진다. 이 구간은 흙길과 데크길이 적당히 섞여 있어 걸을 때 지루하지 않고, 주변 소리가 그대로 들려 마음이 편해진다. 생각을 정리하고 싶을 때 걷기 좋은 길이다.
2. 왕실묘역길에서 만나는 역사
계속 걷다 보면 주황색 리본이나 안내판이 이어진다. 한적한 길을 따라 걸을수록 사람 소리는 줄고 자연의 소리만 남는다. 도중에 멧돼지 주의 안내판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실제로 마주칠 가능성은 낮다. 길을 따라 조용히 걷기만 해도 충분히 안전하다.
이제 거의 마지막 구간에 들어서면, 산책은 왕실묘역길로 이어진다. 짧은 구간이지만 의미 있는 장소들이 등장한다. 먼저 정의공주의 묘가 있고, 조금 더 걸으면 연산군의 묘도 만날 수 있다. 연산군묘는 다른 왕릉에 비해 소박한 느낌이 강한데, 바로 곁에 있는 수령 550년의 은행나무는 그 분위기를 더욱 깊게 만든다. 서울시 보호수 1호로 지정된 이 나무는 높이 25m, 둘레는 11m에 이른다. 가을에 노랗게 물들었을 때 다시 찾고 싶은 장소다.
왕실묘역길은 길지 않아서 방학동길과 함께 걸으면 좋은 마무리가 된다. 골목을 지나 대로변으로 나가면 곧 서울 경전철 북한산우이역이 나온다. 다시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어느새 머릿속이 한결 맑아져 있다.
마치며
도심 속에서 벗어나지 않아도 충분히 자연을 느낄 수 있는 길. 혼자 걸어도 좋고, 친구나 가족과 함께해도 좋은 이 산책길은, 날씨 좋은 계절에 꼭 한 번 걸어볼 만한 코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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