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며
여행을 갈 때마다 빠듯한 일정보다는 한적하게 머물 수 있는 도시가 끌린다. 이번에는 타이베이 시내를 벗어나 근교에서 하루를 보내보기로 했다. 복잡한 도시의 분위기보다는 바닷바람과 고요한 강변, 그리고 소박한 길거리 음식이 있는 곳.
그래서 선택한 곳은 단수이(淡水)와 빠리(八里)였다. 여기에 국립고궁박물원 본관과 남부 분원, 라오허제 야시장, 설탕공장까지 이어지는 일정이었다. 한마디로, 하루하루가 지루할 틈 없이 꽉 찼고, 동시에 느긋했다.
1. 단수이 도착 – 항구 도시의 첫인상
타이베이 MRT 레드라인을 따라 끝까지 가면 닿는 단수이. 도착하자마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날씨에 우산만 하나 들고, 조용히 바닷가를 걷는 기분은 생각보다 좋았다.
단수이는 예전부터 항구 도시로 유명했고, 영화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찾는 이들이 많아졌다. 역 근처는 생각보다 넓고 정돈돼 있었고,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드는 올드 스트리트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2. 단수이 올드 스트리트 – 간식과 향기
올드 스트리트에 들어서자마자 고소한 냄새가 진하게 풍겼다. 여기저기서 떡, 땅콩, 과일주스, 꼬치 등이 손님을 유혹하고 있었다. 하지만 눈길을 끌었던 건, 커다란 간판이 달린 대왕 카스테라 전문점이었다.
카스테라 하나를 주문했는데, 크기부터 압도적이었다. 마치 작은 베개 하나를 통째로 받는 기분이었다. 겉은 적당히 바삭하고 안은 촉촉했는데, 특히 계란향이 풍부해서 계란빵 같은 느낌도 났다.
대왕 카스테라 특징 요약
항목 | 설명 |
---|---|
크기 | 두 명이 먹고도 남을 정도로 큼 |
식감 | 겉은 약간 바삭, 안은 부드럽고 촉촉 |
풍미 | 계란향이 강하고, 단맛은 은은함 |
팁 | 갓 구운 걸 먹으면 더 따뜻하고 촉촉함 |
보관 팁 | 남은 건 종이에 싸서 가방에 넣으면 간편하게 보관 가능 |
카스테라를 손에 들고 바닷가를 걸으니, 단순히 맛을 넘어서 여행의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3. 단수이 명소 산책 – 홍마오청과 진리대학
카스테라로 배를 채운 뒤에는 가볍게 산책을 했다. 홍마오청(紅毛城)은 단수이의 상징 같은 건물이다. 붉은 벽돌로 된 외관이 고풍스럽고, 언덕 위에서 바라보는 경치도 꽤 괜찮았다.
근처에 있는 진리대학교도 잠깐 들렀다. 사람이 많지 않아 걷기 좋고, 캠퍼스의 정원이나 건물 분위기에서도 느긋함이 묻어났다. 그냥 걷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는 곳이었다.
4. 단수이 명물 아게이 – 찾는 과정도 여행
걷다 보니 배가 살짝 고파졌다. 단수이 하면 꼭 먹어봐야 한다는 아게이(阿給)를 먹으러 갔다. 처음 들른 곳은 문이 닫혀 있었고, 약간의 헤맴 끝에 淡水渡船頭阿給老店이라는 식당에 도착했다.
이곳의 아게이는 유부 속에 당면을 넣고 특제 국물에 끓여 낸 형태였다. 국물은 어묵탕처럼 맑고 간이 세지 않았으며, 유부는 탱글탱글했다. 떡볶이를 아주 순하게 만든 느낌과 비슷했다.
5. 페리 타고 빠리로 이동
단수이 선착장에서 표를 끊고, 맞은편의 작은 마을 빠리(八里)로 향했다. 배 타는 시간은 15분 남짓이었고, 요금도 NT$30 정도로 부담 없었다.
도착하자마자 눈앞에 펼쳐진 것은 또 다른 올드 스트리트. 단수이에 비해 훨씬 조용했고, 비가 내려서인지 상점들도 한산했다. 하지만 골목마다 숨겨진 먹거리들이 눈을 끌었다.
6. 빠리 올드 스트리트 – 오징어튀김의 진심
빠리에서는 오징어 튀김이 유명하다고 해서, '할머니 오징어튀김'이라고 불리는 가게에 들렀다. 오징어 몸통을 통째로 튀긴 뒤, 위에는 가쓰오부시와 특제 소스를 얹어줬다.
처음 한입 베어물었을 때 바삭함과 오징어의 쫀득한 식감이 좋았다. 다코야키 소스와 비슷한 맛이 났고, 고추냉이를 함께 곁들이면 매콤한 맛이 더해졌다.
한 줄평을 하자면, 오징어 자체도 맛있지만 소스가 맛을 책임지는 스타일이었다. 자극적이지 않아 간단한 간식으로 딱 알맞았다.
7. 비 오는 날 자전거 여행
빠리에서 유명한 것 중 하나는 단수이강을 따라 자전거를 타는 것이다. 날씨가 좋았다면 강 옆 풍경을 감상하면서 달릴 수 있었겠지만, 이 날은 비가 와서 컨디션이 좋진 않았다.
전기 자전거는 가격이 비싸서 일반 자전거를 빌렸다. 조금 힘들었지만 수동 자전거를 타며 천천히 주변을 구경하는 맛도 있었다. 사람이 거의 없어서 한적한 풍경을 독차지할 수 있었던 건 오히려 장점이었다.
자전거 대여 정보
항목 | 일반 자전거 | 전기 자전거 |
---|---|---|
가격대 | NT$100~150 | NT$200~300 이상 |
장점 | 저렴함, 간단한 이동 가능 | 언덕길에 적합, 피로감 적음 |
단점 | 체력 소모 큼 | 대여소마다 수량 제한 가능성 |
8. 다시 타이베이 – 국립고궁박물원 방문
다음 날은 날씨가 맑아졌고, 바로 국립고궁박물원으로 향했다. 중국의 역사를 그대로 담고 있는 이 박물관은 세계 5대 박물관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입장료는 NT$350 정도였고, 오디오 가이드 대여도 가능했다. 가이드 투어를 듣는 것도 좋지만, 시간을 넉넉히 잡고 느긋하게 보는 게 더 좋았다.
고궁박물원 인기 전시품
작품명 | 설명 |
---|---|
육형석 | 동파육처럼 생긴 옥 조각. 진짜 요리와 구분이 안 갈 정도로 정교함 |
취옥백채 | 배추 모양의 옥에 곤충까지 조각되어 있어 상징성과 기술력 모두 뛰어남 |
이 두 전시물은 출장 전시가 잦아 보기 어렵다고 했는데, 운 좋게 모두 관람할 수 있었다.
9. 박물관 찻집에서의 여유
박물관 관람을 마친 후에는 4층에 위치한 찻집으로 향했다. 차분한 분위기에서 마신 우롱차와 허니케이크는 여행의 피로를 잊게 해줬다.
허니케이크 위에는 금빛 장식이 얹어져 있었고, 한입 베어무니 부드러움과 촉촉함이 살아있었다. 차는 향이 은은하고 진해, 입 안을 정리해주는 느낌이었다.
크게 배고프지 않아도 한 번쯤 들러볼 만한 공간이었다.
10. 저녁은 라오허제 야시장에서
타이베이 시내로 돌아와 마지막 일정은 라오허제 야시장에서 마무리했다. 이곳은 규모는 작지만 전통적인 분위기와 다양한 먹거리로 유명하다.
가장 유명한 건 바로 후추빵. 줄이 길었지만 기다리는 시간이 아깝지 않았다. 겉은 바삭하고, 속에는 다진 돼지고기와 향신료가 가득했다.
한 입 베어물자 육즙이 흘러나와 조심하지 않으면 입천장을 데일 수도 있었다.
또 하나의 인기 간식은 고구마볼. 찹쌀이 듬뿍 들어 있어 쫀득한 식감에 달달함이 은근하게 올라오는 간식이었다.
11. 마지막 목적지 – 자이 남부 분원과 설탕공장
여행의 마지막 날, 자이(嘉義)에 위치한 국립고궁박물원 남부 분원으로 향했다. 기차를 타고 이동했고, 도착하자마자 압도적인 규모에 놀랐다.
2015년에 개관한 이 박물관은 21만평에 달하는 넓은 부지에 현대적인 외관까지 더해져, 시내 박물관과는 또 다른 분위기였다.
사람이 많지 않아 여유롭게 관람할 수 있었고, 체험형 전시도 많아 흥미로웠다.
박물관 관람 후에는 근처에 있는 1906년에 설립된 설탕공장에 들렀다. 전통 증기기관차 전시, 아이스크림 판매, 설탕 제조과정 관람 등 볼거리가 다양했다.
조용한 분위기에서 천천히 걸으며 여행을 정리하기에 딱 좋은 장소였다.
마치며
처음에는 단수이와 빠리만 다녀올 생각이었다. 하지만 어느새 국립고궁박물원, 야시장, 남부 도시까지 다녀오는 꽤 풍성한 일정이 되어 있었다.
날씨가 흐리기도 하고, 예상 못 한 일이 생기기도 했지만, 그 모든 것이 오히려 기억에 남는다.
비 오는 날씨에도 카스테라를 들고 걷던 거리, 소스를 가득 얹은 오징어튀김, 자전거를 타며 바람을 맞던 순간까지.
여유로운 대만 여행을 계획 중이라면, 이 일정은 분명 좋은 참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다시 맑은 날에 한 번 더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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